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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을 가지다 

2013.05.08 - 05.14

 

1. 이동성에 나타난 동음이의어적 표상 전 세대의 고정적 견해에 대한 반대적 경향은 미술사에서 많이 발견된다. 아방가르드,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미니멀리즘은 지난 미술의 이데올로기적 사상에 대한 반대적 성향을 주장 하거나 이전 담론을 뛰어 넘으려는 해체적 경향을 보여왔다. 이러한 기성의 예술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예술운동은 시대의 사고였으며 흐름이었다. 한편, 사회비판적 성향을 다룬 페미니즘은 사회에 만연한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비판과 함께 남성과 여성의 분리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 일류와 이류를 만들어낸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해 왔으며 이것은 페미니즘 미술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어왔다. 위와 같은 예술운동과 시대의 사고는 사회 안에서 소외계층 발생을 억제하고 학문적으론 편협한 사고의 독식을 허용 하지 않았다. 홍지희 작가의 설치 작품은 본질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요소들에 인위적으로 바퀴를 부착하여 이동을 승낙한 것으로 외형상의 가시성과 함께 사회에 만연한 틀을 제거하고 형식과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틀에 박힌 것에 대한 답답하고 좋지 못한 속내를 움직이는 바퀴와 이동이 불가능한 물, 풀, 돌의 결합으로 풀어 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는 지난 예술운동이 밟아 왔던 행적을 현대적으로 또는 작가의 독창적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유동성과 이동성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관심은 이동성에 대한 견해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어릴 적 경험에서부터 출발한다. 작가는 어릴 적 잦은 이사로 인한 주변 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공사현장에서 무차별하게 뜯겨진 풀,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돌의 참혹한 현장을 보며 이동성의 결과로 생긴 부정적인 면을 들추어 내기 시작한다. 작품은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의 이동성과 자연 파괴와 환경에 대한 경시를 표현한 이동성을 함께 다루고 있다. 즉, 작가는 작품을 통해 형식과 틀, 그리고 규범에 대한 자유로운 이동성의 허용을 다루는 동시에 환경파괴와 개발로 빚어진 강제적 이동성의 비판을 함께 이야기한다. 작품은 이동성이라는 하나의 언어를 통해 두 개의 의미를 보여주며 비록 같은 모습과 형태, 발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서로 뚜렷한 다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 공간에 관한 중복적 탐구 현대미술에서 관객의 참여와 개입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며 이것은 공공미술뿐만 아니라 전시장안에서도 그렇다. 과거 미니멀리즘 작가 로버트 모리스 (Robert Morris) 역시 관객이 스스로 지각하여 작품을 완성하도록 시도했으며 그의 노력과 발상은 미술사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홍지희 작가의 전시장안에는 드문드문 또는 무리 지어 펼쳐진 물, 풀, 돌의 형상들이 구별과 경계 없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대상에 달린 바퀴의 자유로움과 이동의 편리함으로 그것들의 움직임은 가능해졌으며 허락된 것이다. 공간은 설치작품을 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관객의 이동과 배회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관객의 움직임” -작품을 발로 건드리는 행위, 작품 위에 앉는 행위, 또는 진입에 방해를 일으키는 작품을 치우는 행위- 은 관객을 작품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작품의 완성을 돕는다. 앞에 견해가 첫 번째 작가의 공간 탐구라면 두 번째 홍지희 작가의 공간은 행위의 주체가 된 관객, 즉 인간이 타자적 요소인 물, 풀, 돌 그 자체와 주변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는 타인에 의해 이루어진 원치 않는 이동이 결국 불안함을 야기시키며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 불안함은 자연의 요소들이 있어야 하는 제자리가 아닌 인간에 의해 강제로 이동되어진 장소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작가는 전시공간을 물, 풀, 돌이 있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으로 상정하여 인간이 행하는 개발, 건축, 공사에 대한 경고를 하는 동시에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물, 풀, 돌로 이루어진 작품이 가득한 전시공간은 현대미술의 화두인 관객 참여와 개입을 포괄하는 장소로 존재하는 동시에 인간의 행위와 무분별한 개발이 상대적 약자가 되어버린 자연 요소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자연을 위한 적절한 장소의 개념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즉, 작가는 현대미술의 주요 쟁점인 관객 참여적 공간의 연구와 함께 인간과 환경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불안한 공간 관계를 탐구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경선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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