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5개월 동안 제주도의 아트창고 레지던시 작가로 생활하였다. 제주에서도 시골마을인 삼달리에서는 생산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직접 딴 귤로 잼을 만들고 감을 따먹고 수확이 끝난 밭의 당근을 주워오고 산책 중 주은 동백씨로 기름을 짜 동백기름을 만들고

바닷가 생물을 잡고 돌 틈에서 자란 무를 뽑아 요리해 먹고 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네 사람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만큼 풀 작업은 길어지고 많아졌다.

캐리어 한짐으로 왔지만 서울로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 사람처럼 짐은 늘어났다.

 

그러다가 제주도에서 살겠다고 결심하고 거주지를 알아봤다.

 

 

 

입주기간이 끝나갈 무렵엔 제주에 머물려는 욕망과 떠나려는 욕망이 동시에 존재해 혼란스러웠다.

제주에 뼈를 묻으려 결심했다가도 서울로 가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상반되는 두 가지 욕망에 갈피를 잡지 못하며

제주의 생활과 서울의 생활을 저울질 했다.

이번 전시 <우리는 흔들린다>는 제주에서 촬영한 영상과 그곳에서 만든 풀,

서울에서 촬영한 영상과 이곳에서 만든 풀이 설치된다.

어두우나 밝고, 무겁지만 굴러가는, 느리지만 자라나는, 심어져 있으나 이동하는

상반되는 욕망을 내면의 풀밭을 통해 심미적인 공간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곳에서 서성이듯 나는 흔들리고, 우리는 흔들린다.

 

 

글 - 홍지희

 

 

▲ <We are shaking 우리는 흔들린다>, 비디오 프로젝터, Lcd 모니터, Music 메구미, Dancer 라무, 00:11:14, 2015

 

<우리는 흔들린다>는 제주에서의 레지던스가

끝나갈 무렵 촬영된 영상으로

일본에서 온 메구미의 음성이 배경음악이 되어

제주에 사는 라무가 흔들리는 풀 아래에서 춤을 춘다.

카메라의 움직이는 시선과 고정된 시선이

동시에 상영되어 여자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시간을 두고 한번 더 울린다.

하얀 눈밭에 새까만 까마귀의 울음소리,

여자의 두 개의 목소리와 남자의 춤....

촬영 시작 전 한라산이 보이는 맑던 하늘은

제주의 바람에 구름으로 덮인다. 춥다!

하얀 입김이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없다.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 있다.

파란 하늘이 하얀 눈처럼 하얗게 쌓인다.

우리는 흔들리며 춤을 춘다.

 

 

 

▲ <Growing Days 자라나는 생활>, 단채널비디오, 00:04:57, 2014

천장이 없는 폐곳간에 파란 풀이 매달려 있다.

그것은 스페인 이끼라 불리는 뿌리를 내리지 않는 식물을 형상화한 풀이다.

뿌리가 없으므로 토양이 필요치 않다.

공기 중에 부유하듯 어디서든 정착할 수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제주의 레지던시 기간 중에 제작한 것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붙여지고 덧붙여져 식물이 번식하듯 자란다.

뚫린 천장을 통해 빛과 바람이 들어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장의 그림자가 드리웠다사라지는데

빛이 폐곳간의 표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천장에 매달려고정되어 있지만 바람에 흔들린다.

자신은 어디서든정착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언제든 떠날 수있고, 혹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 정착하려는 욕망으로 짐을 늘리지만

떠나려는 욕망은 비웃으며 나를 혼란스럽게 뒤흔든다.

 

▲ <Disable garden 불능의 정원>, 단채널비디오, music 석자, 00:05:45, 2014

 

서울에서 촬영한 <불능의 정원>은 뮤지션 석자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다소 어두운 느낌인 그의 음악과암실과 같은 어두운 공간이 배경에 깔려있다.

그곳에 하얀 빛을 뿜어내는 인공적인 풀이 쌓여있고

그 사이사이를 바퀴 달린 풀이 배회 한다.

검은색 천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데

빛의 아른거림이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방치된 내면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bottom of page